여기아세요? 양녕·효령대군 은거 ‘연주암’… 원효·의상·윤필의 수행터 ‘삼막사’ 0
 작성자: 최고관리자  2011-12-19 1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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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국기봉 순례를 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곳이 유서 깊은 사찰인 연주암과 삼막사다. 관악산의 최고봉인 연주대(戀主臺·629m) 절벽 위에 암자가 하나 자리하고 있고, 그곳에서 남쪽으로 약 300m 떨어진 지점에 연주암이 있다. 대한불교 조계종 제2교구 본사인 용주사의 말사다. 연주암은 신라 의상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하는데, 스님들보다는 시주를 내며 인연을 맺은 사람들, 즉 단월(檀越)세력들로 더 유명하다. 그중에 태종의 아들이었던 양녕대군과 효령대군이 한동안 이곳에 머물렀다. 태종이 셋째인 충녕대군, 즉 세종에게 왕위를 물려주자 두 대군이 여러 소문을 피해 이곳에 은신했다는 것이다. 특히 조선시대 불교 중흥에 기여한 효령대군은 유신(儒臣)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회암사와 원각사의 중수와 창건에 관여하기도 했다. 이로 인해 연주암 바로 위에는 효령대군의 영정을 모신 효령각이 있다.
삼성산 삼막사(사진) 역시 용주사의 말사다. 677년(문무왕 17) 원효·의상·윤필(尹弼) 등이 암자를 짓고 수도를 한 것이 이 절의 기원이다. 그래서 절은 삼막사(三幕寺), 산 이름은 삼성산(三聖山)이라 불리게 됐다. 이후에도 여러 유명한 스님들이 이 사찰과 인연을 맺었다. 신라 말 도선(道詵)이 중건하고 관음사(觀音寺)라 불렀는데, 고려 태조가 중수하고 다시 삼막사로 고쳤다. 조선 전기에는 무학(無學)대사가 한양 천도에 즈음해 절을 중수하고 국운이 융성하기를 빌었다고 한다. 조선시대부터는 ‘남왈삼막’(南曰三幕)이라 해서 서울 주변 4대 명찰의 하나로 꼽힐 만큼 유서가 깊은 절이다.

문화일보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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