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불시리즈 8번째 과거 신라시대로 달려 갑니다. 0
 작성자: 운영자  2011-12-24 1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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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존불(本尊佛):석굴암 본존불상은 그 조각의 종교성과 예술성에 있어서 우리 조상이 남긴 가장 탁월한 작품이며, 전세계의 종교예술사상 가장 탁월한 유산이다.

전실의 중앙에 서서 깊숙한 곳에 안좌한 본존불을 예배할 때 연화로 된 아름다운 두광은 더욱 본존불의 영광을 드러내고, 힘찬 수법으로 표현한 복선단판의 두광과 본존불 자신의 소박하고 장중한 모습은 신성한 조화의 분위기를 자아낸다.

두광을 불상에 직접 부착시키는 일반적 방식과는 달리 간격을 두고 멀리 배치하면서도 그 거리로 말미암아 오히려 더 입체적인 조화감을 나타낼 수 있게 한 구성은 다른 곳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것이다.

반개(半開:반쯤 열림)의 눈, 미 그 자체를 나타내는 듯한 온화한 눈썹, 그리고 미간에 서려 있는 슬기로움, 방금이라도 설법할 듯한 자애로운 입과 코, 길게 늘어진 귀, 굽타식의 나발(螺髮:달팽이 모양으로 감아진 머리카락)·백호(白毫:눈썹 사이에 난 흰 털) 등 하나하나의 부분이 생명력을 충분히 간직한 깨달음의 모습으로 표현된 얼굴은 인자하고 부드러우면서도 감히 침범할 수 없는 위엄을 간직하고 있다.

바로 신라시대 석굴암에 대한 글입니다. 오늘은 석굴암에 대해서 자세히 살펴 보겠습니다.

1913년의 중수 때 비도와 석굴원실과의 중간에 있는 두 석주 윗부분에다 아치형의 양석(梁石)을 가로지름으로써 광배의 온전한 모습을 전실에서 모두 볼 수 없게 되었다. 본존불이 안좌하고 있는 고요한 모습은 석굴 전체에서 풍기는 은밀한 분위기 속에서 더욱 신비의 깊이를 더해 주고 있다.

본존의 모든 표현은 지극히 자연스럽다. 인공적인 부자연스러움이 없이 부드럽게 넘치는 생명력을 표현한 간다라식의 어깨 선, 두 팔과 두 손, 가부좌(跏趺坐)를 한 두 다리와 무릎, 그 모든 선들이 어느 한 부분도 허점을 드러내고 있는 곳이 없다. 본존불의 손은 촉지항마(觸地降魔)의 인상(印相:악마의 유혹을 물리치며 땅을 짚어 부처의 영광을 증명하게 하는 손의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그것은 바로 도가 이루어져서 인간의 지혜와 능력이 극치에 달한 때에 생기는 불가사의한 승리자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 몸에 걸쳐진 옷, 어깨에서부터 오른쪽 옆구리로 자연스럽게 늘어진 엷은 옷자락은 역시 기교의 탁월성뿐만 아니라 숭고한 종교성을 드러내고 있다. 본존불의 특징은 무엇보다도 소박성·순수성·자연성에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지금까지 학계에서는 이 본존이 경전에 나타나는 어느 부처님을 표현하는가에 대해서 많은 논란이 있어 왔고, 대체로 이 불상이 석가모니불을 표현하는 것으로 이야기하는 견해에 익숙해져 있었다.

또한, 생각하기에 따라서 이 본존불은 그 위치로 보아서나, 또는 불국사와의 관련에서 판단할 때 석가모니불이 아니라 서방에 위치하는 극락정토(極樂淨土)의 본존인 아미타불로 보는 것도 가능한 일이다.

서쪽에서 동쪽을 향하여 멀리 동해로 그 시선을 돌리고 있는 이 본존불, 또 그 바로 뒤에 본원을 이 현세에서 구현하는 보처보살로서의 관음보살이 배치되어 있다는 사실로 볼 때, 이러한 주장은 전혀 근거 없는 추정이라고만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석가모니불이건 아미타불이건, 결국 그 부처님들이 근본적으로 염원하는 본체는 형상과 언어를 넘어선 일심(一心), 즉 공정하고 강대하며, 편협하지 않고 무상하지 않은 지혜와 자비가 구족된 영원한 ‘하나의 마음’이다.

많은 불전들이 일심의 속성을 아름답게 묘사하였고, 일심의 능력을 무한한 것으로 표현하였다. 본체로서의 불성(佛性), 그것은 하나이다. 그리고 그것은 보이지 않는 은밀한 것이기도 하다.

그 양상과 기능이 때에 따라 보고 듣는 많은 사람들에게 달리 받아들여질 수 있는 것이고 보면, 이 본존불 앞에 예배드릴 때 가장 중요하게 요구되는 것은 오로지 마음속에 숨어 있는 영원하고 지극히 복되고 자유롭고 깨끗한 마음을 드러내도록 하는 일 이외에는 더 중요한 일이 없는 것이다.

본존불의 석련대(石蓮臺)는 백색 화강암으로 만들어졌으며, 그 교묘한 형태와 아름다운 조각의 솜씨는 더욱 본존불의 위용을 돋보이게 하며, 안정되고 굳센 느낌을 가지게 한다.

현재 남아 있는 신라의 불상좌대석으로는 가장 완전하고 우수한 것이다. 맨 밑에는 평면 원형으로 된 2단 기대(基臺)가 있다. 그 위에 이어서 복련대(伏蓮臺:꽃잎이 아래를 향해 조각된 연꽃)가 새겨져 있는데, 그 복련의 연판(蓮瓣:연잎)은 32개이며 매우 웅대하고 화려한 조각 수법을 나타낸다.

그 윗부분에 다시 3단의 구획이 되어 있는데, 제일 위의 것은 정팔각형으로서 직접 석련대의 체(體)를 받들고 있다. 또, 그 각 모서리에는 우주(隅柱:네 귀퉁이에 세우는 기둥)를 만들고, 다시 그 주위에 여덟 개의 5각주(五角柱)를 안정시켜서 변화를 주고 있다.

위의 좌대는 밑의 복련대와 서로 대응하는 모습을 갖추고 있고, 그 밑으로 3단을 만들어 역시 32개의 연꽃무늬로 위를 향한 앙련(仰蓮)을 새겨놓고 있다.

그 윗부분은 평평하여 본존불을 모실 수 있게 되어 있다. 전체높이는 약 3.26m, 최하부의 지름은 3.63m, 그리고 윗좌대의 지름은 2.72m이다. 석굴의 본존불상 바로 뒤, 전면을 향한 제일 중앙에 지름 2.24m의 크고 둥근 돌을 새겨 넣어 두광을 만들었다.

그 주위는 36개의 꽃잎을 가진 연꽃이 조각되어 있고, 전체를 오목한 거울면처럼 해서 전실에 서서 본존을 예배할 때 바로 본존불의 두광이 되도록 구상되어 있다.


































대범천(大梵天)과 제석천(帝釋天):굴 내의 본존불을 둘러싼 4주에는 본존불 바로 뒤의 십일면관음보살을 중심으로 각각 좌우에 7구씩 입상이 새겨져 있다.

그 중 입구에 접한 첫 상은 본존불을 향하여 오른편의 것이 대범천(대범천이라는 하늘의 왕), 왼편의 것이 제석천(제석천이라는 하늘의 왕)이다. 이 두 천은 ≪법화경 法華經≫을 비롯한 모든 대승경전에서 가장 빈번히 언급되는 신화적 존재인 불제자들이다.

대범천은 욕계(欲界)를 벗어난 색계(色界) 제일의 단계에 위치하면서 이 사바세계(裟婆世界)를 다스리는 천왕이며, 제석천은 사왕천 다음의 높이에 위치하는 33천의 천왕이다.

대범천의 조상은 그와 한 쌍을 이루는 제석천과 똑같은 양식의 두광, 즉 연주(連珠)로 엮어진 도란형(倒卵形:달걀을 거꾸로 놓은 모양)의 두광으로 장식되어 있고, 또 꼭같이 흰 불자(拂子:먼지떨이처럼 생긴 불구)를 오른손에 쥐어 어깨 위에 쳐들고 있다.

머리에는 두 상 모두 비슷한 보관(寶冠)을 썼고, 각각 석벽의 굴곡에 따라 보살과 십대제자들 쪽을 향하여 얼굴과 몸을 돌리고 있는 것이 인상적이다.

두 얼굴의 표정에는 오직 정적만이 깃들이고, 거친 욕심이 다 사라져버린 안온한 마음의 경지만이 드러나 있다. 천중의 천인 본존불 앞에 경건하고 의연한 자세를 헝클지 않고 있다.

제석천은 왼손에 군지(軍持:깨끗한 물을 담은 병)를 들었다. 중생의 번뇌를 털고 씻어내는 도구로써 불자와 물병을 들고 있는 것이다.

대범천은 한층 더 높은 색계의 하늘에서 아직도 욕심을 온전히 끊지 못한 천상계의 존재들을 위하여 불자와 금강저(金剛杵:악마를 항복시키는 지혜의 무기)를 들고 그들을 굽어보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

금강저는 불가괴(不可壞:깨지지 않음)의 지혜를 상징한다. 한결같이 그 눈을 하계로 돌리고 있는 두 천왕의 유연한 모습은 영원한 평화를 여실하게 표현한 예술의 극치이다.































≪십일면관음신주심경 十一面觀音神呪心經≫에는 십일면관음의 형상과 의미가 설명되어 있는데, 그 형상은 석굴암 관세음보살상과 거의 완전한 일치를 보인다.

십일면이라고 한 것은 관음보살의 정면인 본얼굴을 제외하고 두부에 부가된 면이 11면이라는 말이다. 경에는 두부 전면에 3면이 있고, 그 좌우에 각각 3면, 그리고 후면에 1면, 정상에 1면, 모두 11면을 가진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석굴암의 관음은 전면에 화불 1면이 있고, 좌우에 각 3면, 위쪽에 3면, 정상에 1면을 가지고 있다. 이렇듯이 11면의 배치에 있어서 약간의 차이가 있는 것은 석굴암의 관음상이 부조이기 때문에 부득이 생긴 변화에 불과하다. 이 11면은 다방면의 기능과 양상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앞의 3면은 자상(慈相)인데 선한 중생을 보고 자심(慈心)을 일으켜 이를 찬양함을 나타낸 것이다. 왼쪽의 3면은 진상(瞋相:화난 얼굴)인데, 악한 중생을 보고 비심(悲心)을 일으켜 그를 고통에서 구하려 함을 나타낸 것이요, 또 오른쪽의 3면은 백아상출상(白牙上出相:이를 드러내어 미소짓는 모습)이며, 정업(淨業:올바른 수행)을 행하고 있는 자를 보고는 더욱 불도에 정진하도록 권장함을 나타낸 것이다.

뒤의 1면은 폭대소상(暴大笑相)으로서 착한 자, 악한 자 모든 부류의 중생들이 함께 뒤섞여 있는 모습을 보고 이들을 모두 포섭하는 대도량을 보이는 것이요, 정상의 불면(佛面)은 대승근기(大乘根機:남을 위해 보살행을 닦는 사람)를 가진 자들에 대하여 불도의 구경(究竟:가장 지극한 진리)을 설함을 나타낸 것이다.

석굴암 십일면관음보살에는 중생의 근기(根機)에 따라 때로는 분노하고 때로는 부드럽고, 그러나 늘 자비로운 웃음을 잃지 않고, 그러한 모든 것들을 포용하는 크나큰 미소 속에 중생을 안주(安住)시키려는 대자대비의 의미가 응결되어 있는 것이다.

<문수보살과 보현보살>:굴 안 주벽의 조상 중 입구에서 두번째의 상으로 대범·제석의 2천과 십대제자의 중간에 위치한 보살상이다. 위치로 보아도 그러하거니와 그 가진 물건, 머리의 관, 구슬 등을 보더라도 이 두 조상은 보살상임에 틀림없다.

일찍이 일본인들은 이 두 조상이 관음(觀音)·세지(勢至)의 두 보살이 아닌가 하는 의견을 낸 일도 있었으나, 확언하는 데까지는 이르지 않았고, 다만 보살상으로서만 인식해 왔다.

근래에 이르러는 이 두 보살상을 문수·보현의 두 보살로 부르는 것이 상식처럼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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