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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중과 세시풍속 0
 작성자: 최고관리자  2010-08-13 11:21
조회 : 18,867  

백중(百中)은 음력 7월 보름에 드는속절(俗節)이며, 백종(百種)∙중원(中元), 또는 망혼일(亡魂日)이라고도 한다. 백종(百種)은 이 무렵에 여러가지 과실과 채소가 많이 나와 '백가지 곡식의 씨앗'을 갖추어 놓았다고 하여 유래된 말이다. 또한 망혼일(亡魂日)이라 한 까닭은 망친(亡親)의 혼을 위로하기 위해서 술∙음식∙과일을 차려 놓고 천신(薦新)을 드린 데에서 비롯되었다.입하(�夏)로부터 시작되는 여름은 '녀름짓다'라는 옛말처럼 밭매기와 논매기 등농사일이 한창인 계절이다. 그러나 '어정 7월, 동동 8월' 이라는 옛말이 있듯이 농촌의 7월은 바쁜 농번기를 보낸 뒤이면서, 한편으로는 가을 추수를 앞둔 달이어서 잠시 허리를 펼 수 있는 시기이기도 하다. 이 시기에 '백중'이라는 속절(俗節)을 두어 농사일을 멈추고, 천신의례 및 잔치와 놀이판을 벌여 노동의 지루함을 달래고 더위로 인해 쇠약해지는 건강을 회복하고자 했다. 백중의 유래에 대해서는 몇가지 설이 있다.하나는 불가에서 유래된 것으로 조선 후기에 간행 된《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불가의 스님들이 재를 올리고 불공을 드리는 큰 명절로 여긴다. 상고하면《형초세시기(荊楚歲時記)》에 이르기를 중원일(中元日)은 승니, 도사, 속인들이 모두 분(盆)을 만들어 이것을 절에 바친다고 했다.또 상고하면《우란분경(盂蘭盆經)》에 목련비구(木蓮比丘)가 오미백과(五味百
果)를 갖추어 분 안에 넣어 갖고 시방대덕(十方大德)에 공양한다고 하였다. 지금 말한 백중일이 백과를 가리키는 것이다. 고려 때는 부처를 숭상하고 이날이 오면 항상 우란분회(盂蘭盆會)를 베풀었다.오늘날 법당에서 재를 올리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이 기록에 의하면 백중의 유래는 불가에서 유래된 것으로, 고려시대에는 우란 분회를 열어 여러가지 음식을 장만하여 부처님께 공양하고, 조상의 영전에 바쳤다. 조선시대 때에는 억불숭유정책으로 불교만의 의식
이 되고 말았다. 한편 제주도에서 백중에 관한 설화가 전해지고 있다.진성기의《남국의 민속》(下)에 소개되고 있는 이 설화에 의하면 백중은 농신(農神)으로 상정되고 있다. 그 내용은 "제주도의 목동이곡식과 가축을 지키려고 옥황상제의 명을 어겼는데, 이로 인해 노여움을 받아 스스로 자결하였다. 그후 농민들이 그가 죽은 날인 음력 7월 14일을 백중일이라 하여 제사를 지내어 그의 영혼을 위로 하였다." 이렇게 볼 때 백중은 본시 우리나라 고대의 농신제일(農
神祭日)이었던 것이 삼국시대 이후 불교의 우란분회의 영향을 받았던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백중에는 여러 풍속이 전해온다. 각 가정에서는 익은 과일을 따서 사당에 천신(薦新)을 올렸으며, 궁중에는 종묘에 이른 벼를 베어 천신을 올리기도 하였다. 농가에서는 중날 머슴들과 일꾼들에게 돈과 휴가를 주어 즐겁게 놀도록 하였다.따라서 이 날이 되면 머슴들과 일꾼들은 특별히 장만한 아침상과 새옷, 돈을 받는데 이것을 '백중돈 탄다' 라고 하였다. 백중돈을 탄 이들은 장터에 나가 물건을 사거나 놀이를 즐기기도 한다. 이때 서는 장을 특별히 '백중장' 이라 하여 풍장이 울리고 씨름 등을 비롯한 갖가지 흥미 있는 오락과 구경거리가 있어서, 농사에 시달렸던 머슴이나 일꾼들은 마냥 즐길 수 있는 날이다. 지역에 따라 이 날 농신제(農神祭)와 더불어 집단놀이가 행해지는데 이를 '백중놀이'라고 한다. 이 놀이는 농촌에서 힘겨운 새벌논매기를 끝내고 여흥으로 여러가지 놀이판을 벌여 온 데서 비롯된 것으로서 일종의 마을잔치이다. 이날은 그해에 농사가 가장 잘 된 집의 머슴을 뽑아 소에 태워 마을을 돌며 하루를 즐기는데, 이를 '호미씻이'라
한다. 호미씻이는 지방에 따라서 초연(草宴), 풋굿, 머슴날, 장원례(壯元禮) 등 다양한 명칭으로 불린다.마을 사람들은 장원한 집의 머슴 얼굴에 검정칠을 하고 도롱이를 입히고 머리에 삿갓을 씌워우습게 꾸며 지게나 사다리에 태우거나 아니면 황소 등에 태워 집집마다 돌아다닌다. 집집마다 돌아다니면 그 집주인은 이들에게 술과 안주를 대접하니, 이날을 머슴날이라고 하기도 한다.마을 어른들은 머슴이 노총각이나 홀아비면 마땅한 처녀나 과부를 골라 장
가를 들여주고 살림도 장만 해 주는데, 옛말에 '백중날 머슴 장가간다' 라는 말이 여기에서 비롯되었다. 신라의 풍속에 백중일을 기해서 부녀자들의 삼삼기 풍속이 있었다. 이에 대한 유래는 고려 중기에 간행된《삼국사기(三國史記)》의 신라 3대 유리왕조의 삼삼기 풍속의 기록에서 찾을 수 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왕이 6부를 정한 후, 이를 두 패로 나누어서 두 왕녀에게 각각 한 패씩거느리게 하고 7월 기망(旣望, 16일)부터 8월 15일까지 길쌈을
시켰는데, 그 공의 다소를 보아 진편이 이긴 편에 음식 대접을 하고, 이어서 가무백희를 하니 이것을 가배(嘉俳)라 하였다." 이러한 풍속은 근래까지도 경남지역에서 '두레삼'이라하여 전승되고 있는것으로 보인다. 경남 지역에서는 친한 부녀자들끼리 품앗이로 한번씩 돌려가며 삼을 삼는 풍속이 전역에 분포하는데, 이를 두레삼이라 한다. 이때 주인집에서는 음식대접을 하기도 하고, 혹은 편을나누어 경쟁을 하여 진편이 이긴 편에 음식대접을 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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