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들어 사람들이 귀한 것에 인색해 졌다.
봄에 힘들여 땅을 파씨를 뿌리고 더운 여름에 땀 흘리며 가꾼 농부는 반드시 그 노력의 댓가로 풍요로운 결실을 얻게 된다. 그리고 이렇게 직접 노력하여 결실을 수확한 사람은 그 결실에 얼마나 힘든 노력이 배여 있는지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낟알 하나, 과일 하나를 소중히 여긴다. 노력으로 성취한 결실에 자부심을 느끼는 동시에 그 결실을 귀하게 여길 줄 아는 것이다.
부모 덕에 고생하지 않고 많은 재산을 상속한 사람들 가운데는 낭비와 사치로 재산을 탕진해 버리는 경우가 많다. 자신이 노력해서 일군 재산이 아니기 때문에 어렵거나 귀한 줄을 모르고 유흥비 등으로 흥청망청 낭비해 버리는 것이다. 그 결과 패가망신하여 재앙의 원인이기 쉽다.
어려워진 우리 경제의 살림살이를 볼 때 이는 다 인과응보의 보답이 아닌가 싶다.
있을 때 아끼기 보다는 남에게 뒤질 새라과시용으로 해외여행과 외제선호, 사치스런 쇼핑으로 인해 허물어져 가는 경제의 타격은 이만 저만이 아니다. 구직의 어려움, 자고나면 오르는 물가, 특히 아직도 습관이 몸에 남아 버리지 못하는 있는 자들의 사치와 낭비가 남아 있는 한 현실 극복의 문제점을 조속히 해결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인가 요즘처럼 살림이 더욱 어려워지자 노력보다는 횡재나 요행을 바라는가 하면, 남이 노력하여 성취한 결실을 빼앗거나 거저 즐기려는 사람들이 도처에 깔려 있다. 노력없이 차지한 것은 겉보기에는 행운이요 횡재인 듯 싶지만, 사실은 결코 자신의 몫이 되지 못한다. 맨손으로 시작하여 피땀 흘리며 재산을 이룬 사람들은 대개 보통사람들 보다 더 검약한 생활을 한다. 어렵게 번돈이기 때문에 낭비하거나 쓸데없는 일에 쓰지 않는다. 자수성가한 기업가들 중에는 자기나 가족들에게는 검소한 생활을 요구하지만, 사회복지 사업에는 아낌없이 큰 돈을 내는 경우가 많은 것은 이러한 배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종교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정당한 노력없이 단번에 구원을 얻으려는 요행심리는 특히 유일신(唯一神)종교를 신봉하는 사람들 가운데서 많이 나타난다. 평생동안 악행을 일삼았던 사람일지라도 한 순간 신에 의한 구원을 받게 되면 모든 죄악이 면제되고 사후(死後)에는 천국에 태어나 영원한 행복을 누리게 된다는 것이 유일신 종교의 교리이다. 궁극적으로 구원 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신의 뜻이지 인간의 노력에 의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따라서 그런 교리를 따르는 사람은 자연히 평소 인격적 성숙과 자기 향상을 위한 노력 보다는 믿음으로 인해 단번에 면죄받고 구원받으려는 일종의 횡재심리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불교는 자신의 노력을 강조한다. 불교에서 말하는 수행은‘도(道)’즉 길을 가는 것이다. 목적지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스스로 가야 한다. 그 누구도 대신해서 갈 수는 없다. 노력의 길에는 반드시 올바른 방향이 제시 되어야 한다. 부처님 은 다름아닌 길을 가르쳐 주신 길잡이요 안내자이다. 일체의 고통을 떠나 완전한 안락을 누릴 수 있는 해탈의 길을 몸소 확인하여 걸으신 다음, 아직 그 길을 몰라 우왕좌왕 헤매는 사람들에게 친절하게 길 안내를 해 주신 분이다. 부처님 은혜로 인해 우리는 어떤길을 따라 걸어야 할지 방황하지 않아도 되게 되었다. 걸어 가야할 바른 길은 이미 마련되었으므로 이제 남은 일은 열심히 걷는 일, 즉 노력하는 일이다. 해탈도(解脫道)를 따라 꾸준히 걷기만 하면 나 또한 부처가 될 수 있음을 우리는 깊이 깊이 깨달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