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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戒)∙정(定)∙혜(慧)를얻고자 한다면! 0
 작성자: 최고관리자  2011-12-16 15:23
조회 : 12,713  

불교에서는 계(戒)∙정(定)∙혜(慧)를 중요시합니다. 계(戒)는 위의(威儀)를 깨끗이 하고, 정(定)은 마음의 산란함을 막으며, 혜(慧)는 사리를 밝고 바르게 판단하여 속박을 떠나게 하기 때문입니다. 계(戒)를 바르게 수지하면 악업(惡業)의 그림자를 물리칠 수가 있고, 정(定)은 번뇌의 먼지를 털어 낼 수가 있으며, 혜(慧)는 미혹으로 인한 어둠을 걷어냅니다.

그래서 계(戒)는 초선(初選)이라 하고, 정(定)은 중선(中禪)이라고 하며, 혜(慧)는 후선(後禪)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계를 초선이라고 하는 까닭은, 정진의 끈을 늦추지 않으면서 계율을 바르게 수지하는 이는 항상 기뻐하게 되고, 또 기뻐함으로 인해 마음의 그늘이 없어져 안정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정(定)을 중선이라고하는 까닭은, 마음이 산란치 않으므로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기 때문이며, 혜(慧)를 후선이라고 하는 까닭은, 이미 있는 그대로 관하였기 때문에 미혹하지 않아, 탐∙진∙치 삼독(三毒)을 제거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몇 생을 두고라도 마음을 갈고 닦아 기어코 해탈의 경지에 이르고야 말겠다는 신심과 정진력을 잃지 않는다면 그 이상의 훌륭한 마음의 보배가 없을 것입니다.
물질문명의 고도성장으로 정신세계가 황폐되고 윤리와 도덕이 사라지고, 순간적 향락으로 혼돈과 모순이 되풀이되는 측면도 있습니다. 이런 때일수록 우리 불자들은 가일층 정진하여 마음의 보배를 더욱 맑게 갈고 닦아, 아직도 밝은 길을 찾지 못해 미혹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는 이웃들을 부처님의 자비하신 품속에 안기도록 해야 합니다.
다정한 가족과 이웃, 그리고 수많은 군중 속에 있으면서도 스스로 소외감을 느껴 마음을 굳게 닫아버린 채, 자기가 사랑을 받고 있다는사실도, 또한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는 것도 잊고서 혼자 고뇌하면서 쓸쓸하게 방황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뜻 있는 사람들은 현대를 불안의 시대라고 통탄하게 되었으며, 이 불안의 시대에서 고뇌하고 방황하고 있는 현대인들을구제하기 위해 인간성의 회복을 절규하고 있습니다.

불가(佛家)에서 상구보리 하화중생(上求菩提 下化衆生)하는 보살도의 실천을 거듭 강조하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이 세상 모든 삼라만상은 서로 얽히고 설켜서 서로 연관되고 부조(扶助)하면서 존재하는 인연법 속의 존재입니다. 스스로의 행복을 위해서는 보다 먼저 남에게 기쁨과 즐거움을 선사하는 보시(布施)로 시작하여, 도의와 질서를 지켜나가는 지계(持戒), 나하기 싫은 것을 남에게 전가하지 않을 뿐만이 아니라 남의 괴로움을 나의 괴로움으로 승화시켜 인욕(忍辱)하면서 대도(大道)를 향해서 오로지 정진하고, 선정(禪定)에 들어 참나를 바로 깨닫고, 바르게 볼 수 있는 반야의 지혜를 깨달아 얻자는 육바라밀 정신으로 궁극적인 행복을 추구하여야만 합니다.

옛 선지식(善知識)들은, 우리의 본심(本心)은허령(虛靈)하여 광활 무변하며, 무등(無等)하여 차별이 없으며, 자비하여 탐욕이 없고, 신선하고 맑아 때가 끼이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도 현대인들은 그러한 무한과 무등, 자비와 청정을 스스로 등지고, 무한과 차별, 탐욕과 진에 속에 빠져 물질문명의 시녀가 되어,불안과 공포, 초조와 극심한 갈등을 자초하여 어둡고 숨막히는 생활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자신이 일 전만 손해를 보면 모두가 이롭게 된다고 해도 하지 않겠다는 극단적인 이기주의와, 황금이면 그만이라는 배금주의자가 날뛰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불자들은 이러한 수렁에 빠져들지 않고 참된 행복을 구가하기 위하여 선지식들이 일깨워주신 보살정신으로 탐욕의 불을 끄고, 자비와 청정의 본향(本鄕)인 인간성의 참된 회복을 위하여 더욱 용맹정진하여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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