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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상은 숭배의 대상 0
 작성자: 최고관리자  2010-05-24 10:02
조회 : 12,117  

부처님께서 성도하신지 6년쯤 되던 해에 기원정사의 낙성 후 승카사로 가서 전법행을 하실 때 평소 석존을 존경하여 마음깊이 따르던 코우삼비국 우다야나왕은 거리가 먼 관계로 오랫동안 뵙지 못하자 사모하는 마음이 깊어져 종국에는 병을 얻게 되었다.
그때 신하들 중 미술가였던 미수갈마가 전단향목으로 석존과 똑같은 모습과 크기의 등신(等身)상을 만들어 왕게 바쳤는데 왕은 마치 부처님을 뵙는 것 같아 크게 기뻐하고 석존께 공양하듯 똑같이 부처님상에 예배 공양을 하더니 그 병도 완쾌되었다.
이런 소식을 접한 사위국의 파세나디 왕도 자색빛 불상을 조성하여 예배 공양을 하였다.
이리하여 불상숭배의 풍습이 생겨났다. 이것은 존경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연유도 모르고『우상』이라고 업신여기고 경멸을 하지만 우리 불자들은 당연시 유래를 이해하고 숭배하여야 한다.
부처님께서 금강경에 설하시길“만약에 형상으로 나를 구하려 한다든지 음성으로 구하려 한다면 이들은 사도를 행하는 자 들이니 여래를 보지 못할 것이다.”라고 설하셨으며 모든 이를 분명히 깨우쳐 주셨고 불상숭배가 외도들이 말하는 우상숭배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불교는 인간 스스로 진리를 깨달음으로써 최고의 불각(佛覺)을 이루고자 하는 종교이므로 엄격하게 말하면 불상이 필요가 없다고도 할 수 있지만 일반 대중에게는 부처님의 진리를 가르치기가 난해하고 어려우므로 앞의 경우처럼 보다 직접적인 만남을 위하여 불상이 필요했던 것이다.
이것은 순수한 믿음의 마음이고 부처님의 진리에 귀의하는 것은 형상 그 자체를 믿고 의지하는 것이 아니다.
예를 들어 군대간 남자가 부모와 애인이 그리우면 수첩에 항상 사진을 넣고 다니며 보고플 때 꺼내보고 힘을 얻는다. 또, 존경하는 인물을 그리워하고 뜻을 기리고자 동상을 세우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 보면 된다.
그러한 본뜻을 알아서 인류에게 빛이 되어 주신 부처님에게 사모하고 감사하는 마음에서 불상을 통해 부처님의 법에 절을 하는 것이니 이것은 곧 부처님께 드리는 예의이다.
그러니 우리불자들은 이런 진의(眞意)를 알고 떳떳해야 할 줄로 믿는다.
불상을 포함한 여러 부처와 보살들에 대한 숭배는 저마다의 기능에 따라 모두 깨달음을 구하는 수행의 과정 속에 편입되는 동시에 현세에서 복을 기원하는 신앙의 대상이 되었다. 이후 대승불교의 불상은 중앙아시아와 중국을 거쳐 발전하면서 이루 헤아리기조차 어려울 정도의 변모를 겪게 되었다. 그러나 원칙적으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피부로 확인하는 추모적인 예배의 대상이며, 현실적인 이익을 얻기 위한 기복의 대상은 아니었다. 앞서 잠시 언급한 대로 부처의 다양한 모습에 대한 이론인 불신론佛身論이 대승불교에서 발전한 것도 여러 부처의 숭배에 대한 올바른 인식과 자세를 제시하기 위함이라 볼 수 있다.
다른 한편으론 불상의 의의를 굳이 해명하려 하는 것이 자가당착인것 같은 생각도 든다. 그러나 아직도 간혹 불상을 우상 운운한 독선과 맹목이 고개를 쳐들고 있음을 보면서 스스로가 자신의 신앙 대상에 대한 이해를 확고히 해야 할 필요를 느낀다. 지극히 객관적인 뜻풀이로서 우상을‘신앙의 대상이 되는 상像’이라고 본다면, 불상은 물론이고 십자가에 새겨진 예수의 상과 성모마리아상을 포함한 종교의 모든 상들이 우상이다. 그러나 흔히 우상이라 할 때는 지극히 배타적이고 부정적인 의미가 내재되어 있다. 우偶라는 말 자체가 허수아비를 뜻하듯이, 종교인이 사용하는 우상이라는 말에는 내가 믿는 것만이 옳고 다른 이들이 믿는 것은 거짓이라는 독선이 깔려 있다. 어쩌면 이러한 용법은 기독교인 특유의 사고방식에 기인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따라서 이런 사고방식은 적어도 고등종교의 입장에서 보면 너무나 비종교적이
므로 굳이 대꾸할 가치를 느끼지 않는다 기독교인이 아닌 일반으로부터 불상을 우상이라고 비판하는 소리를 듣는다면, 이는 불교인이 불상을 너무 기복祈福의 대상으로 숭배한다는 인상 때문일 것이다. 불상은 부처님이 지닌 무궁한 자비와 구제력의 상징임을 부인할 수 없다. 복은 단순히 빌어서 오는 것이 아니라 부처님의 가르침에 대한 믿음과 실천을 통해서 얻어진다. 이러한 사실들이 믿기지 않을 때 우리는 불상 앞에 서서 다시 확인하는 것이다. 그리고 불상의 장엄 앞에서 그간의 독선과 아집을 타파하고 자신의 믿음과 삶을 겸허하게 반성한다. 이런 자세도 갖추지 않고 구원을 기대한다면, 이는 맹목적으로 복을 구하는 기복에 불과하다. 애초에 불상이 제작된
것도 사실은 이러한 가치의 필요성 때문이라고 이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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