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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등의 진리 0
 작성자: 최고관리자  2011-12-16 15:47
조회 : 12,552  

우리는 내 자신이 역사의 주인이며, 우주(宇宙)의 주인임을 깨닫고 이러한 본래적인 삶이 부처님의 삶과 동일한 것임을 알아야한다. 이는 부처님과 내가 근본적으로 다른 어떤 초월(超越)적인 존재가 아니다. 그런 존재는 본래부터 있지 않았다. 다만 부처님은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를 여실하게 깨닫고 그대로 실천하는 분이며 우리도 누구나 차별없이 그렇게 살아갈 수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아버지와 아들은 본래부터 같은 성품이듯이 부처와 중생의 성품은 동일한 것이다.

우리가 불자(佛子) 즉, 부처님의 아들이라는 것은 바로 부처의 성품이 우리의 본성임을 뜻하는 것이다. 부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법은 바로 이러한 진리의 법이다.

온 세상을 뒤덮은 큰 구름에서 고루 비가 내리면 산이나 강이나 계곡에서 자라는 갖가지 나무나 풀들은 그 비를 맞고 자란다. 같은 땅에서 같은 비를 맞고 자라나지만 국화는 국화꽃을 피우고 사과나무에는 사과가 열린다. 이같은 각기 차별되게 자라는 것은 땅이나 비가 차별되기 때문이 아니다. 부처님께서 설하신 법은 비와 같이 한 맛이고 중생들이 뿌리를 내리고 있는 성품은 땅과 같이 한 모습이지만 부처님의 법을 통해 살아가는 모습은 저마다 다른 것이다 이처럼 한 맛 한 모습의 법 속에서 저마다 차별되게 살아가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중생들의 근기(根機)에 상하의 차별이 있고 그들의 노력에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부처님은 모든 중생이 거룩한 부처의 성품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아실 뿐 아니라 근기의 차별과 능력의 차이까지도 아신다. 따라서 그 차이에 따라 중생들이 감당할 수 있는 길을 갖가지로 차별되게 설하신 것이다.

사람들은 지식이나 능력의 정도에 따라 생각하고 행동하는 방식이 다르다. 부모와 자식의 관계에 비유해 본다면 젖을 먹는 아이는 배가 고프면 젖을 생각하고 젖을 구하기 위하여운다. 그러나 이가 나고 말을 배운 아이가 배가 고프면 밥을 생각하고 밥을 달라고 이야기한다. 더 자라서 성숙한 아이는 배가 고프면 직장을 구하여 벌이를 하기 위해 학문과 기술을 배운다. 이 때 부모는 이러한 아이의 능력과 요구를 잘 알아서 젖먹이가 울면 젖을 주고 아이가 밥을 구하면 밥을 주고 성장한 아이에게는 교육을 시켜 스스로 밥벌이를 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 비록 부모가 주는 젖과 밥과 교육은 그 모습은 다르지만 그것이 아이를 길러 자라게 함에는 차별이 없다. 오히려 젖먹이와 어린이와 성장한 아이의 차별을 알지 못하고 모두에게 젖을 주거나 밥을 주거나 교육을 시킨다면 이것은 어리석은 부모일 뿐 아니라 자식에게 평등한 부모의 행(行)이 아니다.

우리는 평등하다는 것을 똑같은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평등은 차별을 올바로 알고 그에 따라 올바로 차별된 모습으로 대해주는 것이다. 비가 사과나무만 자라게 하고 다른 풀이나 나무는 자라지 못하게 한다면 비는결코 평등한 것이 아니듯이 평등과 차별은 서로 다른 것이 아니라 진리 속에서는 하나인 것이다.

부처님의 법은 이와같이 평등과 차별의 분별을 초월한 절대평등의 진리이다. 그 진리 속에서 삼라만상(森羅萬象)의 차별된 모습이 조화롭게 나타나는 것이다. 이렇게 만법은 차별되지만 그 차별이 곧 평등이라는 진리, 이것이 부처님의 한 맛 한 모습의 법이며 이 법을 깨닫는 것이 모든 불평등한 세계에서의 해탈이요, 모든 헛된 욕망과 갈등에서 벗어남이요, 고뇌를 소멸함이며 진정한 열반(涅槃)인 것이다. 그리고 이것을 깨달은 지혜가 일체종지이며 부처님의 지혜이다.

이러한 절대평등의 진리 속에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오직 부처님만이 이것을 걸림없이 알고 있을 뿐, 우리는 알지 못하고 있다. 부처님은 우리에게 이것을 알리고자 세상에 출현하셨으니 곧 큰 구름이 일어난 것과 같으며 그진리를 알려 주셨으니 비를 내린 것과 같다. 우리는 이 부처님의 법우(法雨)를 통해 부처가되고 또 무량한 중생에게 법의 비를 평등하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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