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살아가는데 있어 필요
한 인간의 기본질서나, 인간 개개
인이 마땅히 행하거나 지켜야 할
도리를 불교는 잘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그 대표적 가르침이
‘칠불통계’입니다. 모든 악을 짓
지 말고, 많은 선을 받들어 행하
되, 스스로 그 마음을 깨끗이 하
는 것, 이것이 모든 부처님의 가르침이다.”라는 칠불통계
는 불교윤리를 잘 대변해주는 글귀이지요.
‘악을 멈추고 선을 행하라’는 말은 어떠한 형태의 윤리나
도덕에서도 나타나는 일반적인 교훈입니다. 그런데 불교
의 가르침인, 선을 하고 악을 하지 말라는 것은‘좋은 일
을 하면 즐거운 과보가 오고 나쁜 일을 하면 괴로운 과보
가 온다’는 원리에 의해 뒷받침 되는데, 이렇게 악을 근절
하고 선을 권하기 위해서도 선은 즐거운 것이고, 악은 괴
로운 것이라는 것을 분명히 보여줘 선을 추구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일반적인 윤리는 선과 악의 분별 속에서 이루어지기 때문
에, 윤리학에서 논하는 선은 악과의 관계에서 악과 대립된
선, 즉 일종의 상대적인 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괴로운
과보를 가져오는 것인 악에 대해서, 선은 즐거운 과보를
가져오는 것인데, 이렇게 부귀영화나 무병장수라는 미래
의 즐거운 과보를 약속함으로써, 세간의 상대적인 선은 인
간에게 집착심을 유발시킵니다. 결국 선과 악의 상대적인
분별의 근저에는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번뇌심이 작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세속의 선을 유루
선(有漏善)이라고 부릅니다.
선과 악의 분별이 집착과 번뇌를 통해 이루어지는 이상,
악을 멈추고 선을 행한다고 해서, 생로병사로 인한 근원적
인 괴로움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괴로움
의 완전한 소멸 상태인 열반에 이르기 위해서는, 집착과
번뇌를 낳을 뿐인 이원적인 분별심 그 자체를 가라앉혀야
합니다. 윤리적으로 선과 악을 논하기에 앞서, ‘선과 악으
로 분열되기 이전의 원래 상태’로 되돌아가, 상대적인 의
미에서 선과 악에 매달려 머리를 아프게 하지 말고, 오히
려 보다 넓은 차원에서 선도 악도 넘어서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선과 악을 초월하여 열반에 도달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에서 최고의 선이며, 선과 악의 상대적 분별과
대립이 끊어진 절대적인 선입니다. 또한 여기에서는 탐욕
과 분노와 무지로 인해 끝없이 새어나오는 번뇌가 마침내
차단되기 때문에, 그것을 일러‘무루선’이라고도 합니다.
이처럼 선악 이전의, 선악의 경계선 너머의 본원적 절대성
을 추구하는 것이야말로 일반적 윤리성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불교적 종교성의 핵심입니다. 그러나 선악을 초월한
다고 해서, 선악을 무시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것은 선악 이전의 청정심의 자리로 돌아가, 그
자리를 윤리와 선악의 원천으로 삼음으로써, 아무 것에도
걸림이 없으면서도, 자신의 행위가 저절로 세간의 윤리 규
범에 응하여 전혀 잘못됨이 없는 상태로 된다는 것을 의미
합니다. 이 지점이야말로 선악 초월의 자유와 자재가 만나
는 곳이며, 세속선과 승의선, 상대적 선과 절대적 선, 세간
적 선과 출세간적 선이 융통하는 접점입니다.
선의 추구로부터 발생하는 또 다른 악을 근원적으로 차단
하는 효과를 얻을 수 있는 불교적 선이야말로 참다운 선이
라 할 수 있습니다.